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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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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불사 댓글 0건 조회 1,153회 작성일 14-06-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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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

-일타스님의 생활속의 기도법-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 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 부처님 이마의 도끼 -철원:심원사-

옛날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심원사에 묘선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강원 공부를 마친 지 얼마 안되는 스님은 매사에 의욕적이었지요. 어느 날, 노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던 묘선스님은 노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했답니다. 『스님, 아무래도 절이 너무 낡아 보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살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엄두를 내겠느냐.』
『스님, 오늘부터 제가 백일기도를 드려 불사를 하겠습니다.』 묘선 스님은 그날로 백일기도에 들어갔지요. 젊은 스님의 기도는 간곡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밤. 『묘선아, 네 기도가 그토록 간절하고 불심이 장하니 반드시 시주가 나타나 절 중창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화주를 구하러 나가도록 해라.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심원사 중창불사의 시주가 될 것이니라.』 꿈에 나타나신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잠에서 깬 묘선은 거뜬한 마음으로 길 떠날 채비를 차리곤 노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승 화주길에 오르겠습니다.』 『오냐, 잘 다녀오너라.』 묘선 스님이 막 산문 밖을 나서는데 왠 나무꾼 하나가 아침 일찍부터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 꿈 생각을 한 묘선 스님은 나무꾼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아랫마을에 사는 머슴 박씨였습니다. 『머슴 박씨가 우리 절 중창 불사 시주가 될 수는 없을 텐데… 그냥 지나칠까.』 묘선 스님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아냐,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인데….』 묘선 스님은 박씨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아이구, 심원사 스님이시군요. 어디 먼길 떠나십니까?』

묘선스님은 일손을 멈추고 공손히 인사하는 박씨에게 간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주가 되겠느냐고 물었셨지요. 박씨는 한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50평생 못 간 장가, 이제 가서 뭘하나. 차라리 그 동안 머슴살이로 모은 재산 절 짓는데 보시하여 부처님께 공덕이나 지어야지.」

마음을 결정한 박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스님께 대답했다. 『스님께서 제게 시주가 되라는 데는 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라 40년간 모은 저의 전 재산을 불사기금으로 시주하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소. 이 인연공덕으로 다음 생(生)에 좋은 인연을 받을 것입니다.』

박씨의 시주로 심원사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머슴 박씨가 시주를 한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만 자리에 몸저눕고 말았다. 그러나 돈을 모두 절에 시주한 박씨는 약도 쓸 수가 없었다.

주인집에서는 머슴이 일을 못하고 눕게 되자 공밥을 먹일 수 없다고 박씨를 절로 보냈다. 절에서는 박씨를 위해 극진히 간병하면서 정성껏 기도를 올렸으니 차도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됐고, 끝내 박씨는 죽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묘선 스님이 순진한 머슴 박씨를 속여 결국은 죽게 했다고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묘선 스님은 더이상 심원사에 머물 수가 없었다.
절을 떠나기로 결심한 스님은 새벽예불을 올리러 법당으로 들어갔지요.
희미한 촛불 속에 부처님을 바라보는 묘선 스님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가피는 커녕 시주자를 죽게 한 부처님」이란 생각을 갖게 된 묘선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헛간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스님의 손에는 어느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스님은 법당으로 다시 들어가 부처님 이마를 도끼로 내리치고는 황망히 절을 빠져 나갔다.그 뒤 전국을 만행하는 묘선 스님의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했다.

심원사 부처님 이마에 박힌 도끼가 빠지지 않는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 날. 묘선 스님은 심원사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자신이 그 도끼를 뽑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심원사로 갔다.

절은 30년 전 불사가 중단된 모습 그대로였고 부처님 이마엔 도끼가 박혀 있었다. 묘선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마침 그 무렵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는 돈독한 불자로서 심원사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손수 뽑겠다고 절에 와 있었다. 법당에 들어선 사또는 삼배를 올린 후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뽑았다. 도끼는 쉽게 빠졌다.

그 도끼를 들여다본 사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주 시주 상봉」도끼에는 이렇게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모습을 법당 문밖에서 바라보고 있던 묘선 스님은 그때 비로소 부처님이 머슴 박씨를 죽게 한 뜻을 깨달았다.

스님은 사또 앞으로 나아갔다. 『소승이 바로 30년 전 이 도끼로 부처님 이마를 찍은 사람입니다. 사또님의 전생은 이 절에 시주하신 머슴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시주를 구한 화주승은 바로 저이지요. 화주승과 시주가 인연 있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시주 화주 상봉」이란 바로 오늘의 인연을 부처님께서 미리 계시하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선 스님의 설명을 들은 사또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일어나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스님, 이제 멀리 떠나지 마십시오. 부처님 뜻으로 인연 맺어 스님과 제가 다시 만났으니 심원사 불사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돈은 제가 시주하겠습니다.』 심원사 중창불사는 30년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묘선 스님은 심원사를 중창한 후 그 절에 오래 머물면서 큰스님이 되어 많은 신도를 교화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 시운속죄(時雲續罪)

묘향산 염선봉 절벽 위의 조그마한 암자 상원암(上元庵)에는 시운선사(時雲禪師)와 혜성(慧成)이라는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시운선사와 절친한 친구의 아들인 혜성의 본명은 최치록(崔致祿)으로, 갓난 아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스님을 따라와서 이 암자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시운선사는 "내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달라."는 친구의 유언대로 혜성이에게 정성껏 글과 무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혜성이의 나이 스물에 이르자 혜성이의 장원급제를 위한 천일 기도를 남몰래 시작하였고, 천일 기도가 끝나는 날 혜성이를 불렀습니다.

"혜성아. 이제 속세로 내려가서 과거를 보도록 하여라." "아니되옵니다. 스님. 저는 아직 공부가 미흡할 뿐 아니라 스님을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스님. 조금만 더 있게 해주십시오." "장원급제하여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것도 부처님과 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 이제 때가 되었느니라.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내려가도록 하여라." 스님의 단호한 태도에 혜성은 더 이상 보채지 못하고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스님.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 큰 절을 올리고 떠나가는 혜성의 뒷모습을 보며 시운스님은 끝없이 축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디 혜성이가 입신양명하도록 은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어느덧 해가 바뀌어 화창한 봄날이 돌아오자, 시운스님은 묘향산 밑의 안주(安州)로 내려가 탁발을 했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적지 않은 공양미를 시주받은 스님은 암자를 향해 발길을 돌리다가 몇 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장터로 갔습니다.스님이 막 장터로 들어섰을 때, 젊은 거지 하나가 장삼자락을 잡고 애처롭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한푼만 보태 주십시오. 며칠을 굶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시운스님은 엽전 몇 닢을 꺼내어 가엾은 거지의 손에 쥐어 주다가, 문득 거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너는 혜성이 아니냐?" "앗. 시운스님!" "그렇게도 오랫동안 부처님께 빌었건만, 장원급제는 고사하고 거지 신세라 말이냐?" 시운스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기구한 운명과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저주와 분노가 부처님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은 몸을 돌려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백여 리나 되는 험한 산길을 한달음에 뛰어올라온 스님은 칼을 집어 법당으로 달려들어 갔습니다. "이 허수아비 부처야! 그렇게도 사람을 속일 수 있단 말이냐? 에잇!" 스님의 손에 들린 칼은 쇠로 만든 부처님의 복부로 향했습니다.
"찡-." 칼은 부처님의 배에 깊이 꽂혔고, 실성한 듯 시운스님은 절을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방곡곡을 돌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저주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시운스님의 발걸음은 묘향산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상원암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아, 부처님의 배에 꽂은 칼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스님의 발길은 저절로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암자에 도착하여 법당 문을 열자, 배에 칼을 꽂은 부처님이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깊이 죄의식을 느낀 시운스님은 먼저 부처님의 배에 꽂힌 칼을 뽑아 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들어 갈 때는 그토록 쉽게 들어갔던 칼이 아무리 힘을 써도 뽑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꽂힌 칼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포기하고 법당 앞뜰에 앉아 옛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산 아래에서 요란한 풍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의심하여 아래로 내려다 보았더니, 여러 관속과 하인들을 거느린 행렬이 암자를 향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 마당이 요란해지더니 젊은 관속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안주 목사 행차시오." 할 수 없이 시운스님은 목사의 행차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가마에서 내린 안주 목사가 스님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안주 목사 최치록이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오. 혜성아! 네가 틀림없는 혜성이렷다?" 스님과 안주 목사가 된 혜성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곧이어 혜성은 그때 암자를 떠난 직후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을 하던 중 시장에서 스님을 만났다는 것과, 그뒤 병이 나아 과거에 급제하고 안주 목사에 제수되어 가장 먼저 스님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혜성은 시운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합장 배례한 후, 부처님께로 다가가서 배에 꽂힌 칼을 한 손으로 쉽게 뽑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당돌한 소행을 용서하옵소서. 실은 어젯밤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이 칼을 빼도록 일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뽑은 칼을 시운스님께 건네 주는데, 그 칼에는 뚜렷이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운속죄(時雲續罪)." 시운스님은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1백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행하는 참회좌선(懺悔坐禪)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앞에 청수(淸水) 한 그릇과 부처님을 찔렀던 칼을 놓고 깊이 깊이 참회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21일이 지나자 칼에 새겨졌던 '시운속죄'라는 글씨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시운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자기의 죄가 소멸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윽코 단식참회 30일이 되었을 때 탈진한 시운스님은 부처님 앞에 쓰러져 입적하였습니다.

그때가 1459년(세조 5) 8월이었고, 소식을 들은 안주 목사 혜성은 후히 장례를 치르고, 절기에 따라 극진히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가피가 빨리 찾아올 때도 있고 늦게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같은 태양이 천하를 비추지만, 봉우리에는 빛이 먼저 찾아 들고 골짜기에는 빛이 나중에 찾아 드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가피가 조금 늦게 찾아 든다고 하여 조급증을 낼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애착과 큰 기대는 큰 착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치 이 시운스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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