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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극복(숫타니파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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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불사 댓글 0건 조회 777회 작성일 14-06-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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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마나 살는지 아무도 모른다, 고뇌로 엉켜있다.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살아 있는자는 반드시 죽음을 기약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원시불교나 대승불교의 복잡한 교리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의 원음에 가장 가까운 것을 읽으면서 부처님의 인간적인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아울러 불교교리의 방향도 짐작할 수가 있다. 이번에는 죽음을 주제로 다룬 부분을 읽어보자. <숫타니파타>의 <대품>중에 있는 이 경의 제목은 화살이지만 부처님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명은 정해 있지 않아 얼마나 살는지 아무도 모른다. 애처롭고 짧아 고뇌로 엉켜 있다.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살아 있는 자는 반드시 죽음을 기약하고 있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와 같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여기서 부처님은 인간이 꼭 죽어야 할 처지에 있다는 것과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출가한 동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죽음의 해결이었다. 인간들이 종교를 가지는 것이나 우리가 불교교리를 공부하는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을 바로 맞아들이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절을 찾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이 불교를 믿으려는 이유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분의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너무도 죽음을 무서워해서 안타깝기도 하고 추하게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불교에는 분명히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맞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가르쳐 주리라는 기대에서 불교를 찾았다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필자는 직접 본 적도 있다. 불법공부를 잘하던 노보살님이 있었다. 그분은 불법을 철저하게 닦고 싶은 생각에서 육식은 물론 파·마늘까지도 먹지 않았다. 열심히 수행하다가 어느 날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는지 아들과 딸들을 불러 놓고 "나는 내일 사시에 떠날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고 유언을 남겼다.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를 사시라고 한다. 다음날 사시에 그 노보살님이 쓰러졌다, 자손들은 노보살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온갖 약을 써서 돌아가시지 못하게 하기는 했지만 의식만 있을 뿐, 몸은 쓰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손들보고 "죽게 내버려두지 병원에 와서 이 고생을 하게 하느냐."고 나무랬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노보살님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의사들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매달리며 육식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했는지 고기음식을 먹으려고 했다, 그 노보살님은 병석에 누운 지 2년 후에 돌아가셨다. 자손들은 자신의 어머님이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어찌할 줄 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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