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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스님─기도의 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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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불사 댓글 0건 조회 853회 작성일 14-06-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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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큰스님이 직접 겪으신 관음 가피력◆ 이 이야기는 혜암 큰스님께서 직접 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 혜암 큰스님은 얼마전 열반에 드신 종정스님이 아니십니다. 근대 선종사에 큰 획을 긋고 오래전에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이십니다. 간단히 혜암스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쓰고자 합니다. 혜암스님은 1886년에 황해도에서 3대독자로 출생하셔서 1900년 15세때 보암스님을 은사로, 금운스님을 계사로 득도하셨다 합니다.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으셨으며, 1984년 100세의 고령으로 미국 서부에 있는 능인선원의 봉불식에 참석, 대한항공 역사상 가장 고령 탑승객으로 기록되기도 하셨습니다. 1984년말에 설립된 덕숭총림의 초대방장으로 초대 되셨으며 1985년 101세(법랍89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신유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혜암스님) 금강산 마하연에 있을때의 일이다. 대중이 몹시 웅성거려 나가보니, 얼굴이 잘생긴 어떤 청년이 목에 연두창이 터져 피고름과 함께 마치 송장이 썩는 것처럼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보고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그 몸으로 뭐하러 다닙니까?" 하니 "예 제 직업이 바로 의사입니다. 영 국에서 <곱살바>라는 부인이 공부를 시켜 그분을 모시고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생긴뒤로 나는 물론 그 부인도 병을 고칠 수없어 이제는 완전히 체념하고 폐인으로 떠돌아 다닌 실정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기독교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환자가 기독교인이였는 듯함) 부처님 말씀에는 <한정된 목숨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병에 걸린 것은 신심이 철저하고 독실하면 고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까?" 하니, 그는 "이미 버린 목숨이니 하다가 죽어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스님으로 만드니 대중스님네는 냄새 때문에 같이 못있겠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그런 비방과 구설을 다 참고 내 방을 비워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대로 살기 틀렸으니,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을 지성껏 불러라. 병을 고치고 못 고치는 것은 오직 그대 정성과 결심에 달렸다." 고 일렀다. 한동안 나는 그의 동정을 살펴 보았다. 그는 밤을 새워 가며 눕지도 아니하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 보살>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한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소복으로 단장한 젊은 부인이 어린애을 안고 있는데 그 애는 자꾸만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하도 신기하여 "어쩌면 저렇게 어린애가 염불을 잘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부인이 "왜 귀찮게 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부인에게 다가가서 그 병을 고쳐 주십사 하고간청을 하였다. 그때 그 부인은 손가락으로 그의 목을 꼭 눌렀다. 그 러자 마자 달걀 같은 것 두개가 목에 축 늘어져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부인은 가위로 그것을 자르려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 하기를 "그 가위를 잘 소독하고 잘라 주십시오"하니 부인은 "너는 지금까지 의사 하던 버릇으로 그런 소리를 하지마는, 이 가위는 원래 독이 없는 것이다." 하고, 그 혹 같은 것을 잘라 주었다. 그는 다시 "이 겨드랑의 것도 잘라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그것은 아직 그대로 두어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꿈을 깨었다. 그뒤로 그 종기는 피고름이 차차 멎고 병이 아주 나았다. 이렇게 병을 고친 그는 내 첫 상좌로 법명은 동일(東日)로 지금은 이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영험담은 밀알 출판사에서 나온 "벼랑끝에 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라는 큰스님의 법문책에 나와있는 글입니다. 혜암 큰스님의 오동송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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